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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에 해당되는 글 8건
[urisesang, 2008/06/22 11:45, 사진공양]
  생각은 왜 그리 많은지 궁금합니다. 108배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우며 무념(無念)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절을 올리기 전 떠오르지 않았던 것들이 왜 하필이면 안고 엎드리며 외울 때 일어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집중을 해야지 결심을 한 후 고작 한 두 번 절을 하고 나면 어느새 잡념속을 헤메고 있습니다. 진언을 외울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를 악물고 집중에 집중을 해야 한 번 정도 잡념없이 외울 수 있습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은 업일 것입니다. 가슴 아팠던 일 실수했던 일 후회했던 일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절을 하는 중간 자책하고 분해하다가 '아 그러면 안되지'하며 다시 평상의 마음을 가지려 애씁니다. 진언을 외울 때 단골로 들어오는 생각 또한 상처에 관계된 것들입니다.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하고 상처 받은 이를 부처님이 잘 보살펴달라고 기도 시작 전 참회를 하지만 생각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죽비하나 필요합니다. 장군죽비 마음속에 두고 싶습니다. 선방을 울리는 큰 소리 나는 경책의 도구가 절실합니다. 잡념을 때려잡기 위함입니다. 안거 내내 용맹정진(勇猛精進)으로 일관하는 선방이 있는 문경의 대승사 법당에 그 죽비가 부처님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을 염호하는 염주와 내 허물을 때리는 죽비가 같이 붙어있으니 인연은 묘하고 묘합니다.
[urisesang, 2008/02/18 09:18, 사진공양]
  주지스님께서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팠음에도 불구하고 무자년 신중기도 마지막날 철야기도를 주재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무거웠습니다. 스님들은 살을 에는 겨울 새벽에 예불을 나설 때 어떤 마음일지 조금이라도 느껴보기위해 사진을 찍으려고 생각하던 차였는데 아픈 스님께서 철야 기도를 이끄신다기에 수행자와 기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아프면 아무리 가족이 있다한들 세상에 홀로 떨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아픔을 참고 중생을 위해 나서는 스님을 바로 눈앞에서 보며 찍기란 결코 마음 편한일은 아니었습니다.

  '평생 이런 심한 감기를 앓아 본 적이 없다'는 스님이 치는 죽비 소리가 법당을 가득메운 불자들의 가슴에 어떻게 다가갔는지 궁금합니다. 스님이 중생을 위해 올리는 기도는 죽비소리와 염불 소리로 변해 극락전에 가득찼습니다. 당신을 위한 기도라면 신음소리도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의 쉰 목소리 염불이 '진정한 기도는 타인을 위한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 했습니다.

  '인연과 업탓에 이생에 수행자와 일반인의 삶을 살겠지'라는 편리한 생각은 이제 하지 않습니다. 자기 헌신을 전제로 하며 전생에서 살았던 삶을 이생에서 다시 남을 위해 사는 결심도 힘든 일을 실천하는 분들이 수행자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수행과 기도는 동전의 앞 뒷면임을 느낍니다. 수행이 멀어질 때 기도 또한 멀어지고 기도를 등한시 할 때 수행도 하지 못함을 스님을 바라보며 깨닫습니다. 수행도 기도로 남을 위한 것이 아니면 모래성이니 수행자의 헌신적인 기도가 그저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urisesang, 2007/11/26 13:31, 사진공양]
  가을과 겨울 사이에 만추가 있습니다. 한 달쯤 되는 이 기간은 제5의 계절이라 칭해도 될 듯 합니다. 아름다움으로 쳐도 신록 못지 않은데다가 사람을 생각에 들게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계절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뒤 덮었던 잎들이 낙엽으로 변해 바람에 날리고 발에 밟힙니다. 눈은 비처럼 쏟아지는 낙엽을 쫓고 귀는 발 밑의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혼자 그 길을 걸으며 영화속의 주인공이 됩니다. 어느새 옷에는 낙엽 하나 앉아 있습니다.

  만추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을 알려주는 '교실'입니다. 넓은 그늘을 드리웠던 큰 나무의 잎도 낙엽 돼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보이는 계절이지요. 조금 이해되지 않습니까. 색이 공이요 공은 색이라는 진리를 터득 할 때 '만추는 만추지'라고 하면 큰 스님 내리는 죽비에 등이 아플 것 같습니다.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