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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해당되는 글 1건
[urisesang, 2010/01/31 11:08, 잡문]

얼마 전 보도 된 신간 소개에서 시인 백석이 북한에서 음식을 주제로 시를 썼다는 얘기를 듣고 안타까웠다.

책을 읽어 보지 않아 선생의 시에 어떤 서정이 들어있는지 모르겠으나 많고 많은 대상을 뒤로한 채 '먹을 것'을 대상으로 시를 지었다는 것은 '한국 최고의 서정시인'의 말년 시작으로 선뜻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노골적으로 공산체제를 옹호하는 시인으로 돌아서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지만 그간 내가 알았던 '시인 백석'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것 같아 그가 처했던 상황을 상상해보니 가슴이 저려오기까지 했다.

만약 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자야 여사가 살아계셨더라면 필자의 아쉬움과는 비교도 안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그 마음은 더해졌다.

                        길상사 길상헌.사진=이종승

서울 성북동 길상사는 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자야여사의 시주로 만들어진 절이다. 여사는 길상사 대웅전 왼편에 있는 길상헌에서 죽을 때까지 백석을 기다리며 살았다.

젊은 날 백석과의 짧은 사랑과 동거가 백석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된 이후 그녀 가슴에 남아있는 사랑은 오직 백석을 향한 것 뿐이었다.

'영어 발음 좋은 모던 보이' 백석의 젊은 모습은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미남,훈남의 수식어가 모자랄 정도로 준수하다.

여사는 무려 40여년 넘게 그를 기다리다가 타게하기 몇 년전 '내사랑 백석'이라는 책까지 냈는데 그 책에는 백석을 향한 김여사의 그리움이 절절하다.

만약 여사가 생존해 '내 사랑 백석'이 음식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시의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백석이 처했던 상황을 짐작해가며 무척이나 가슴 아파 했을 것 같다.

                        길상사 영단에 모셔져있는 길상사 공덕주 김자야 여사. 사진=이종승

왼쪽 사진은 영어교사 시절 찍은 백석이다. 백석은 일본 야오야마 영문학과에 유학한 수재이자 신남(新男性)이었다.화려한 이목구비와 긴 목, 단정한 넥타이와 양복은 영낙없는귀공자 풍이다.

한국 최고의 서정시인으로까지 칭송을 듣는 그가 이런 외모에 백그라운드까지 갖췄으니 당시 백석을 연모하던 여인네가 무릇 한 둘이 아니였으리라.

길상사 극락전 영단 한 편에 모셔져 있는 김여사의 영정사진에는 일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다. 길상사를 시주한 공덕주를 기리기 위한 절의 배려인 셈이다.

두 분의 사진을 한데 실은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젊은 날의 백석을 사랑했던 여인은 늙은 모습으로 영정사진 속에 있으니 세월이 참 야속하다.

두사람의 사랑이 이뤄졌으면 시인은 시인대로 더 좋은 시를 남겼을 것이고 여사는 여사대로 '사랑이 주는 행복'을 누리며 살았을 것인데 말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은 어디에나 있지만 두분을 한데 모셔놓고 보니 느끼는 아쉬움이 더 진하다.

어느날 북에서 들려 온 서정시인의 말년 근황이 '인연'에 대한 생각을 더하게 한다. 아쉬움은 진함을 넘어 세상살이에 대한 야속함으로 이어진다. 마음이 울적해진다.


인민증에 붙어있었다는 시인 백석의 말년 모습이다.

시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본 탓인지 몰라도 그의 말년 모습에는 다감함과 인자함그리고 문인으로서의 기품이 어딘지 모르게 묻어나는 것 같다.

궁핍함이 살짝 보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며 살았던 표시도 있는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선생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여우난골족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여우 난 골에서 사는 일가 친척들이란 제목에서 풍기는 토종적 서정이 시안에 가득 담겨있다. 이제 곧 설인데 명절의 분위기가 이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여우난골족族     <백석>


명절날 나는 엄매아배 따라 우리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

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

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로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복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

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이녀李女 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承 동이 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山을 넘어 있다는 해변에서 과부가 된 코끝이 빨간

언제나 흰옷이 정하든 말끝에 설게 눈물을 짤 때가 많은 큰골

고무 고무의 딸 홍녀洪女 아들 홍洪동이 작은 홍洪동이


배나무접을 잘하는 주정을 하면 토방돌을 뽑는 오리치를 잘 놓

는 먼섬에 반디젓 담그려 가기를 좋아하는 삼춘 삼춘엄매 사춘누

이 사춘동생들이 그득히들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 안간에들 모여서 방안에

서는 새옷의 내음새가 나고 또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깨때의 두부와 콩나물과 뽂은 잔디와 고사리와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

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를 하고 가마 타고 시

집가는 놀음 말 타고 장가가는 놀음을 하고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밤이 깊어가는 집안엔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간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쌈방이 굴리고 발리깨돌림하고 호박떼기하고 제비손이수손이하

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멫 번이나 돋구고 홍게닭이

멫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 자리싸움을 하며 히드

듣거리다 잠이 든다 그래서는 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

츰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홍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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