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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해당되는 글 3건
[urisesang, 2007/01/10 18:45, 사진공양]



2007년 1월 1일 사시예불 때 법운거사님 가족이 천수경을 독송하고 있습니다. 법당에는 가족 단위로 오신 분들이 있었으나 맨 앞 줄에 있는 이 가족이 눈에 띠였습니다. 새해 첫 날 이 댁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부처님을 공경하는 예불에 참석하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자 환희심이 났습니다.

초등학생인 선재거사는 법운거사 만큼이나 단정히 앉아 정성으로 경을 읽고 있습니다. 누나들 보다 더 의젓하게 보입니다. 공부 핑계를 대며 독서실로 향할 것 같은 거사님의 딸들도 한자리에 앉았으니 기특합니다. 법운거사님이 중심을 잡고 일명주 보살님이 외호(外護)하는 듯한 자리배치도 가족은 화합의 산물임을 느끼게 합니다.

새 해 첫 날을 맞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해맞이를 하러 높은 산을 오르기도 하고 바다를 찾아 결심을 굳건히 하기도 합니다. 불자가 되기 전 저 또한 나름대로 새 해를 맞았습니다. 그것도 좋았지만 부처님 법을 알고 난 후 삼배를 올리며 기도와 발원으로 맞는 새해가 더 좋습니다. 한 해의 첫 날을 인연과 관계 속에서 다시 맞음에 감사드리며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잘살고 영가들의 극락왕생이 조금이라도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저를 뒤돌아보며 다 잡기 때문입니다.

[urisesang, 2006/11/25 11:05, 커튼 뒤의 사진들]
11월19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전국에 있는 5대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우의를 나눈 행사가 있었습니다. 증조할아버지(5대) 할아버지(4대) 아버지(3대) 나(2대) 내 아들(1대) 이렇게 5대가 생존해 있는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잔치를 연 것입니다. 이분들은 하루종일 호텔에서 재미나게 노셨는데 언론에 핀포인트 돼 보도된 것은 할머니들의 팔씨름 이었습니다. 강병기 기자가 이 행사의 태반을 지켜보며 훈훈한 장면을 담아왔습니다. 가족과 건강의 소중함을 몸으로 보여주신 26가족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더 알리기위해 이번주 커튼 뒤의 사진으로 골라봤습니다.
드물게 보는 할머니들의 팔씨름 입니다. 할머니들을 위해 레크레이션으로 준비했다고 합니다. 시합을 하고 있는 분들의 연세는 거의 백살 입니다. 오른쪽 유주손(96세) 할머니와 왼쪽의 임월분 할머니(94)가 자웅을 겨루고 있습니다. 강기자에 따르면 시합을 하기 전 부터 신경전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유할머니가 당신의 딸을 이기자 임할머니가 '도전자'로 나서면서 이날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됐습니다. 임할머니가 자리에 앉으며 유할머니에게 '니 몇살이고?'라는 물음에 '아흔 여덟이신데요'라고 주위분들이 대신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임월분 할머니가 이런 질문을 하신 이유는 할머니가 사시는 근방에서 당신 보다 연장자가 없었기에 '내보다 분명 나이가 어릴거다'라는 속내를 표출해 기선을 제압하기위한 의도와 도대체 몇 살이기에 딸을 이겼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한데 당신 보다 두 살이나 위라는 것을 알자 예상이 빗나갔던지 임월분 할머니는 입을 더 이상 말씀을 안하셨다고...
임월분 할머니의 팔뚝을 보십시오. 94세 할머니 팔뚝이라고 믿기 힘들정도로 두껍습니다. 젊었을 적에 쌀 한가마는 거뜬히 들었을 것 같습니다. 팔뚝 위로 소매를 걷어올린 할머니의 열정에 '언니'가 질렸는지 첫 판은 임월분 할머니의 승리로 돌아갔습니다.
임월분 할머니가 유할머니를 이기자 다른 할머니도 나섰으나 유할머니의 적수가 되질 못했습니다. 비록 임월분 할머니에게는 졌지만 만만치 않은 강자였습니다. 사진에는 두 분이 팽팽이 힘을 겨루고 있는듯 보이지만 유할머니의 당당한 표정과 상대의 안간힘 쓰는 모습에서 결과를 예측 할 수 있습니다. 주최측은 승자에게만 상품권을 증정하기로 했지만 참석한 모든 할머니께 드렸다고 합니다.
유주손 할머니가 딸을 이기는 순간입니다. 두 분 모두 한복을 팔꿈치까지 걷어올린 걸 보면 최선을 다한 것 같습니다. 유할머니의 표정에는 최선을 다해 힘을 쓴 표정이 남아있습니다. 힘으로 자신을 이긴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표정이 궁금합니다. 엄마가 딸을 이길 수 도 있지만 90대가 70대를 이겼으니 보통일은 아닙니다. 가족들의 표정이 생각만큼 요란하지 않습니다. '큰할머니가 이겼다'라고 환호성이 터지며 96세에도 건강한 할머니를 둔 흐뭇한 표정이 묻어났을텐데 약합니다. 아마도 따님이 져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어머니를 한순간이라도 즐겁게 해드리기위한 효도일 것입니다.
5대가 함께 모인 안팔분 할머니 가족 입니다. 고손(高孫)과 함께 사진을 찍는 할머니의 마음을 나타내는 양 당신의 표정은 흐뭇합니다. 가족들도 역시 그렇습니다.

3대가 모인 가족 사진을 봐도  좋은데 5대가 한자리에 모여있습니다. 1부터 5까지 이어진 숫자가 세상 어느 훈장보다도 더 고귀하고 좋게 보입니다. 안할머니의 장수는 의료기술의 발전도 한목 했겠지만  화목한 가정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었을 것입니다. 5대를 바라보는 제 마음은 한없이 부럽기만 합니다. 가족간의 화목과 건강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런 가치를 부질없이 여기는 게 아닌가 반성도 합니다.
핵가족이 일반화된 오늘날 '5대 가족'의 모임은 가화만사성이 제일 이라는 걸 웅변합니다.
각박하다면 각박한 세상에 보기 좋은 모습을 보여주신 5대 가족 모든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urisesang, 2006/09/12 17:59, 잡문]
'이 사람' 코너를 만들어 놓고 한 번도 사진과 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 첫번째로 고이중섭 화백의 그림과 저의 짧은 단상을 올립니다. 사람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이중섭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50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6일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한국미술품 감정협회 주최로 그의 추모행사가 있었습니다. 작년 10월 위작시비에 휘말린 후 이중섭 선생의 그림은 미술품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합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기념 해야 할 대화가의 서거50주년 추모식이 세상의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치뤄진 것 입니다. 유가족도 참석하지 않은 쓸쓸한 추도식이 된 셈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선생의 그림입니다. '달과 까마귀' 1954년 작으로 그해 대한미술협회전 출품작 입니다. 통영에서 그렸지만 선생이 짧았던 제주시절에 본 까마귀를 생각하며 그리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 그림은 몇 년전 선생의 전기를 읽으면서 복사해두었던 것입니다. 한동안 노트북 초기화면에 깔았던 적도 있을 만큼 좋아하는 그림입니다. '추사체를 보는 듯한 힘있는 붓질로 자신의 심상을 표현한 그림이며 함축미가 돋보이는 수작'이라고 평자들은 말합니다.
'판잣집 화실'입니다. 이 그림역시 제 노트북의 초기 화면을 장식했습니다. 선생이 한국전 종전 직후 일본에서 돌아와 부산에 잠시 머물렀을  때 그렸습니다. 선원증 덕에 꿈에 그리던 아내와 자식들을 만나고 일주일 만에 일본에서 부산으로 돌아온 선생은 다시 가족들을 만날 꿈에 부풀렀던 것 같습니다. 선생의 그림 중 유독 밝습니다.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술을 한 잔 걸친 후 파이프 담배를 문 채 큰 대자로 누워있는 선생은 행복해 보입니다. 가족을 그린 그림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가족이 선생의 중심이었음을 알게 합니다.

'자화상'입니다. 1955년 대구 전시회 이후 실의에 빠졌을 때 그린 것입니다. 선생의 잘생긴 눈에는 우수가 가득합니다. 달관함이 보이지만 선생의 애잔한 생애를 기억하는 제겐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1년 후 세상을 떠나는 선생은 이승에서의 일들을 인연과 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은 표정입니다. 길지 않은 생애 중에서 기뻤던 때도 있었을텐데 왜 '슬픔의 시대'를 증명하는 자화상이 지금껏 전해지는지 야속합니다. 예의 힘찬 붓터치 대신 세밀한 묘사가 돗보인다고 감탄하지만 공허합니다.

선생과 저는 꼭 48년의 나이차가 납니다.
짧은 생각에 저는 선생이 '세상을 속인 걸'로 오해 했습니다. 얄팍한 재주로 한탕 하려 했던 걸로 착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선생의 평전을 읽으며 그 생각이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알았습니다. 불경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속죄의 의미로 이러저러한 글도 썼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언젠가 쓴 글 중에서 꼭 선생의 묘지에 막걸리 한 잔 놓고 용서를 빌겠노라고 한 적이 있는데 아직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모쪼록 선생의 타계 60주기는 물론이고 선생의 탄신100주기가 되는 2016년에는 온 국민이 선생의 천재성과 예술에 대한 진실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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