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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에 해당되는 글 9건
[urisesang, 2009/12/31 11:42, 사진공양]
  마흔 중반을 넘기고 보니 흔히 쓸 수 없는말들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호방함입니다. 호방은 세상사를 꿰뚫고 있어야 나오는 기질입니다. 작은 것에 얽매이지 않고 큰 것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대의로 향할 때만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며칠간 스님들과 함께 있으면서 가장 크게 느꼈던 것은 호방함 이었습니다. 왜 머리를 깎았는지 깎고 나서 어떤 수행을 했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를 여쭈어도 껄껄 웃는 것으로 모든 대답을 대신하니 몰라서 웃는게 아니라 '큰 웃음으로 모든걸 대신할테니 알아서 재량 껏 여겨라'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왼쪽에 서 계신 분은 범어사 강주 용학스님이시고 오른쪽에 앉아계신 분은 도정스님 입니다. 두 분은 해인사 강원 도반입니다. 년배 비슷하고 불법 공부를 가야산 해인사 강원에서 같이 한 인연은 보통이 아닐 것입니다. 속가의 기준으로 본다면 '친우'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한 분은 대강백인 무비스님을 이십년 이상 모시면서 경공부에 매진하셨고 다른 한 분은 남방불교를 열심히 수행해 도반스님이 '물욕이 없다'라는 평가를 하시지요. 지금 두 분은 금강경의 글자체인 안진경체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입니다. 스님들의 박학이 들어나지요.

스님들 계신 방이 휑한 이유가 있습니다. 완성되지도 않은 방을 당신이 가르키는 학인 스님들 더 돌보시려 강주스님이 고집 피워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심심상인으로 그것을 안 도정스님은 가끔씩 용학스님께 얼굴 비춰 '뭐 도와줄 일 없나' 하고 도반의 기색을 살피시는 데 오늘도 그것 때문에 오신 것 같습니다.
사진쟁이 사진 못 찍어 두 분이 가진 호방함과 도반 사이에 흐르는 정을 표현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urisesang, 2009/12/29 08:56, 사진공양]

  단정히 걸려있는 가사들이 눈길을 끕니다. 그 뒤로 가사를 반듯한 몸가짐으로 만지고 있는 스님을 통해 그것들이 어떻게 걸렸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범어사 강원의 큰 방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엄정함입니다. 그것은 한국 불교의 특징이자 강원의 특징이요 나아가서는 범어사 강원만의 독특함일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법의 전수가 자유분방한 가운데 이뤄진다면 참 좋겠으나 사람은 환경에 지배되는지라 무사안일속에서는 감각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 때 남는 것은 무거운 윤회의 업 밖에 없을 것입니다. 스님들은 겉의 자유대신 엄정함 속에서 더 큰 자유를 지향하는데 강원의 엄격한 생활이 그 한예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쟁이는 강원의 큰 방이 맘에 듭니다. 누가 보든 말든 여여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스님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갈함이 넘치는 바로 이곳에서 한국 불교의 특장이 흐르고 훗날 여기에서 형성된 문화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 불법이 넘치는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쁜 마음도 듭니다.
강원있는 사찰 안에 대강백께서 승속을 막론하고 부처님의 법을 쉽게 깨닫는데 도움을 주시고, 그 수제자가 스님들을 한치의 흐트러짐없이 이끄시니 선지대본찰에 걸맞는 교육기관인 것 같습니다.

[urisesang, 2009/12/27 21:11, 사진공양]

  범어사 대성암 큰 방의 그림자가 멋드러지게 토방에 비췄을 때 방선시간에 맞춰 선방을 나서는 스님을 찍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첫째 이유는 그림이되는 그림자 때문이었고 둘째는 스님이 기둥을 막 지나쳤을 때 찍을 수 있다면 사진은 영원히 남을거란 예감 때문이었지요.

  더벅머리가 선에대해서 아는게 하나도 없는지라 사진을 통해 '무엇과 무엇이' 만나는 그 접점을 말한다는 게 어불성설일수도 있지만 엉덩이에서 진물 나 좌복에 붙어버린 선사처럼 끊임없이 두드리고픈 마음은 있습니다. 도대체 '그순간'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오는지 한국의 절집과 일상에서 찾아내는 노력을 하고 싶은것이지요.

  기록되어지는 것들은 2000년 초반의 한국불교이고 이것들은 전통을 어떻게 이어왔는지 알게해줄 것입니다. 겉모습은 이러하지만 그안에 들어있는 불법의 영원성과 부처님의 자비는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고있는 현대인들에게 현대를 지탱하고있는 '그무엇'이 불교에 있다는 믿음이 사진쟁이를 법당 주변에서 서성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수좌는 금새 온 방선시간이 못내 아쉬웠기 머리에는 털모자를 얹고 뒤로부터 선방을 나서는 것이겠지요.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