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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에 해당되는 글 10건
[urisesang, 2009/11/29 23:13, 잡문]
  며칠 전 아내의 코 고는 소리를 들었다. 코를 곯지 않던 아내가 그날은 소리나게 곯았다. 아내의 코곯이는 리듬미컬 했다. 약하게 시작해 정점에 올랐다가 다시 약해지기를 반복했다. 한시간 정도 계속된것 같았다. 평소 간난쟁이가  쌔근쌔근 자며 내는 소리정도로 코를 곯았던 아내가 이날 만큼은 그렇지 않았던 것은 피곤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그날 아침 고3과 중2 아이들이 먹을 김밥을 싸기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수능시험을 막 마친 큰 아이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져 육식과 단백질 그리고 밀가루를 안먹이는 게 상책이라고 판단한 아내는 열흘 전부터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채소류와 장류를 위주로 식단을 짜다보니 품이 많이 들었고 아침 식사시간을 맞추려면 평소보다 3-40분 정도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피로가 누적됐던 것이다.

  아내 때문에 자라오면서 들었던 여인네들의 코곯이가 생각난다. 큰어머니,외할머니의 그것이 마음에 남아있는 것들이다. 큰어머니의 코고는 소리는 아주 어렸을 때 들었다. 농사를 지었던 큰어머니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얼마나 피곤했던지 잠을 맛있게 주무시면서 그에 걸맞는 코를 곯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큰어머니 손에 컸던 나는 그때 당신이 냈던 소리의 의미를 몰랐었다. 외할머니의 코고는 소리는 대학때 들었다. 그 때 이미 칠순을 넘기셨던 할머니는 조금만 피곤해도 코를 고셨던 것 같다.
아내,큰어머니의 코곯이는 노동의 댓가다. 아내는 가끔 '나 이제 퇴근한다. 뭐 시킬일 없지'라고 말하며 주방에서 안방으로 들어간다. 아내의 근무 시간은 대략 6시서부터 밤9시까지다. 아이들의 귀가가 늦어지거나 하교를 도와줘야 할 때는 근무시간이 뒤로 몇시간씩 늘어난다. 꼭 같은 일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그것도 12시간 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내게 시집 온 후 20년 가까이 해온일에 아내는 가끔 염증을 낸다. 너그럽지 않은 남편은  아내의 뿔을 받아주지 못하고 오히려 더 뿔을 냈는데 평소 보다 크게 코를 고는 아내를 보고 내 좁음에 부끄러웠고 아내가 안쓰럽게 보였다. 다음날 '당신 어제 코 크게 곯더라. 정말 피곤했나봐' 그랬더니 '그래? 얼마나 크게 골았어? 당신 만큼 그렇게 크게 곯았어'라고 오히려 내게 묻는 것이었다. 아무리 남편이지만 여자가 코를 '크게 곤것에'대해 부끄러웠기에 물었을 것이다. '아니 들을만 했어. 내거 하고는 비교가 안돼지'라며 넘어갔다. 가슴속에는 '싸'하고 뭐가 온 것 같았다.
큰어머니는 코를 곤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어서 당신이 코를 곯았는지 어땠는지 짐작도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에 걸린다. 큰아버지와의 단 몇 개월의 신혼 생활이 세상에서 누렸던 가장 큰 행복이었던 큰어머니는 그후론 농사일과 벗하며 평생을 사셨다. 모든 게 과장되게 기억되는 어렸을적 일이라도 당시 큰어머니의 코고는 소리는 무척 컸던것 같다. 신경이 날카로와지는 시기가 아니었기에 잠을 잘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큰어머니를 깨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나 큰어머니나 무딘 손을 훈장처럼 갖고 있는 한국의 '어머니'들이다. 외할머니 역시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온 집안을 반들반들하게 만들고 맛깔난 음식 만드느라고 여기저기 발품 판탓에 코를 곯았던 무뎌진 손을 가진 '알뜰한 어머니'였다.

  아내의 코곯이는 삶의 애환을 다르게 내는 소리다. 큰어머니의 그것은 마음속에 담아놓았던 한이 변한 것이다. 외할머니의 코고는 소리는 긴 생을 살아 오며 풍상을 겪은 사람들이 내는 바람이다. 한국의 여인네들 더 정확히는 어머니들은 어쩌면 몸짓도 소리도 어머니 답게 내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사는 그들에게 '코곯이'는 훈장임에 분명하다. 아무나 달수 없는 훈장. 오늘밤도 내일밤도 많은 어머니들과 아내들이 그들이 내는 소리가 훈장인지도 모른 채 깊은 잠속에 빠져있을 것이다. 그네들의 생이 축복으로 가득차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urisesang, 2009/11/24 20:48, 사진공양]
사진을 찍기위해 여러차례 들렸던 금산사 적멸보궁의 향로안에서 일직선으로 올라가는 향을 보고 놀랐습니다. 거의 다 탄 향에서 나오는 연기가 눈으로 보일뿐아니라 사진으로도 찍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과 밖의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야 보이는 향이 곧게 곧게 진신사리탑을 향해 올라가는 광경은 감격스러웠습니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 앞에서 피어나는 저 향은 외람되지만 부처님을 향한 제 마음을 올 곧게 보여주는 듯 했기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불교를 대할 때 염화미소를 지을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찾고 또 찾았던 장면을 봤거나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나타낸 현상이 나타날 때면, 사람이라면 동요하지 않을 수 없을텐데 제게 바로 이장면이 그랬습니다. 통도사 금강계단에서도 보지 못했던 뜻 깊은 장면을 금산사에서 대할 수 있을지 상상조차 못했는데 말입니다. 어떤 불자가 어떤 염원을 담아 부처님께 향을 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을 향한 그 분 불자의 간절한 기도는 사진쟁이가 받아 세상에 알리게 되었으니 이 사진 다시 씨앗되고 소금되어 온 사바세계에 부처님의 자비와 불법이 충만해진다면 이것이 바로 선연이 아니겠습니까.
[urisesang, 2009/11/19 23:15, 사진공양]

  내가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것들은 이상하게도 변해간다. 젖먹이 어렸을 적에는 그 포근한 어머니였던 것 같고 한참 까불고 천방지축 온 사방을 쏴 다녔을 때는 세상이 내가 제일 믿는 것이었다. 그때 세상은 즐거웠기에 아이는 그것을 믿었던 것 같다. 까까머리 중고교 때는 딱히 믿는 것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웃음 나오는 순수의 시절이었기에 믿는 게 없었던 게 오히려 더 좋았던 것 같다. 세상 물에 조금씩 조금씩 물들어 갔을 때 나는 무엇을 믿었을까. 사람들이 모이면 흔히 말하는 그것들을 믿었었다. 아니 지금도 믿고 있다고 들어가는 소리로 말할 수 있겠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들이 그것이라니까... 어쩔 수 없이 수긍해야 한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기만 하다. 양심은,마음은 웅성대다가 마침내는 소리친다. 믿는 게 그거라면 너무 한 거 아니냐고. 여러 생을 살아오며 나를 이루는 그 뿌리는 호응한다. '그래...내가 잘못하고 있는거야...믿을 걸 믿어야지...변하는 걸 믿는 것보다 영원을 믿는 건 어떠니...지금 바로 믿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미안해 할 필요는 없어. 그것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니까'
깊어만 가는 이 가을. 다시 오지 않을 귀중한 시간들을 보내며 금산사에서 찍어 온 사진을 펼쳐 봅니다. 분명 무엇이 통했길래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은 것인데 이제서야 왜 찍었는지 생각이 났습니다. 사진쟁이는 그래도 믿는 걸 생각 할 수 있는 '내 마음의 벤치' 하나 갖고 있습니다. 내 의자에는 낙엽 수북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항상 그곳으로 돌아 갈 수 있습니다. 자리 잡고 마음 편히 해주는 그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